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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이씨

홍주이씨 3세 이응송(李應松). 1126년(인종 4)에 과거에 급제하여 판추밀원사 재임

by gwangyeob5958 2024. 9. 10.

■ 홍주이 씨 3세 이응송(李應松)

홍주이 씨 3세 이응송(李應松)은 1106년(예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에 밝았으며, 1126년(인종 4)에 과거에 급제하여 판추밀원사에 올랐다.


1126년(인종 4년)에 이응송(李應松)이 판추밀원사로 재임하면서 군사 개혁을 추진하고 국방력을 강화했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고려의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요나라와의 관계 개선에도 힘썼으며, 1110년에는 요나라와의 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간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 이응송이 추진한 군사 개혁

- 병력 증강 : 군대의 규모를 확대하고 병력을 훈련
- 무기 개량 :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보급
- 전술 개선 :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고 훈련

홍주이씨 3세 이응송

 

 

 

❏ 판추밀원사

고려 시대 추밀원(樞密院)의 정 2품 관직. 추밀원은 헌종 원년(1095)에 중추원이 개칭된 것으로, 판추밀원사는 장관직임.

 

고려 시대 정령(政令)의 출납(出納)•궁중의 숙위(宿衛)•군기(軍機)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성종 10년(991)에 송(宋) 나라의 추밀원(樞密院)을 모방하여 중추원(中樞院)을 설치하였는데, 현종이 처음 즉위하여 중추원(中樞院) 및 은대(銀臺)•남북원(南北院)을 혁파하고 중대성(中臺省)을 두어 삼관(三官)의 기무(機務)를 관장케 하였음. 

 

동왕 2년(1011)에 중대성을 혁파하고 다시 중추원을 두었음. 헌종 원년(1095)에 추밀원(樞密院)으로 고침. 충렬왕 원년(1275)에 밀직사로 고침. 동왕 24년(1298)에 광정원(光政院)이라 고침. 충선왕 2년에 밀직사의 관질(官秩)을 높여서 첨의부(僉議府)와 함께 양부(兩府)라 칭함. 공민왕 5년(1356)에 추밀원(樞密院)으로 고쳤다가 동왕 11년(1362)에 다시 밀직사로 고침. [네이버 지식백과] 밀직사 [密直司]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판추밀원사는 고려시대 추밀원의 장관으로, 추밀원사 또는 판밀직사사라고도 불렸다. 추밀원은 군사, 밀정, 궁궐 경호 등을 담당하는 관청이었으며, 판추밀원사는 추밀원의 업무를 총괄하고 왕에게 군사 및 국가 안보에 대한 조언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판추밀원사는 문관과 무관 모두 임명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군사 경험이 풍부한 무관이 임명되었다. 

판추밀원사의 주요 업무

- 추밀원 업무 총괄 : 추밀원의 모든 업무를 감독하고 지휘
- 군사 지휘 : 군사 작전을 계획하고 지휘
- 국가 안보 : 국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 수립
- 왕의 조언 : 군사 및 국가 안보에 대한 조언


판추밀원사를 역임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 김종직 : 고려시대 초기의 명장으로, 추밀원사로 재임하면서 여러 차례 요나라의 침략을 막아냈다.
- 이지방 : 고려시대 중기의 무신으로, 추밀원사로 재임하면서 군사 개혁을 추진하고 국방력을 강화했다.
- 최영 : 고려시대 후기의 무신으로, 추밀원사로 재임하면서 몽골의 침략을 막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