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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림2

이희건(李希建). 본관은 홍주(洪州). 아버지는 홍평군(洪平君) 이종장(李宗張). 이괄의 반란군 격파(길마재, 현재 서울 안산 무학재) ❏ 이희건(李希建)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중식(仲植). 아버지는 홍평군(洪平君) 이종장(李宗張, 충주목사, 임진왜란때 탄금대 전투에서 사망)이다. 무과에 급제, 안주목사로 있다가 한때 견책을 받아 평안도우후(平安道虞候)로 좌천되고, 뒤에 선천부사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용천부사로 있을 때 부원수 겸 평안병사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원수 장만(張晩)을 따라 반란군을 길마재[鞍峴]에서 격파,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홍양군(洪陽君)에 봉하여졌다.    ❏  생애 및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 안주목사로 있다가 한때 견책을 받아 평안도우후(平安道虞候)로 좌천되고, 뒤에 선천부사가 되었다.  ❍ 1624년(인조 2) 용천부사로 있을 때 부원수 겸 평안병사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 2024. 9. 11.
충주목사 이종장(李宗張). 탄금대 전투에서 왜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이종장과 아들 이희립(李希立)과 함께 전사 ❏ 충주목사 이종장(李宗張)충주목사 이종장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홍주(洪州)이고 자는 문경(文卿)이다.  1569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1591년에는 신천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목사 겸 조방장(助防將)을 제수받고서 도원수 신립(申砬)을 따라 출정하였다가 탄금대 전투에서 사망했다.   신립은 8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려하였는데, 이종장과 종사관 김여물(金汝岉)은 들판에서의 교전이 불리함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기마병을 활용하여 보병인 왜병을 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지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탄금대 전투에서 왜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신립은 전사하고, 이종장도 아들 이희립(李希立)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종장은 .. 2024.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