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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북 익산 여행. 미륵사지 . 미륵사지 석탑.

by gwangyeob5958 2024. 10. 17.

□ 미륵사

미륵사는 용화산에 있었던 백제 시대의 절이다. 당시에는 아시아에서 규모가 가장 컸으나 지금은 석탑과 당간 지주만 남아 있다. 이 절에는 원래 나무로 만든 탑을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다. 따라서 미륵사지 석탑의 정확한 명칭은 ‘미륵사지 서쪽 석탑’이 되지만, 목탑과 동쪽 탑이 남아 있지 않아 미륵사지 석탑이라고 부른다. 현재 미륵사지에 있는 동탑은 미륵사지 석탑의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1993년에 복원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석탑은 재료만 나무에서 돌로 바뀌었을 뿐 이전에 주로 만들었던 목탑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돌탑이 처음 만들어진 때의 모습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원래는 더 크고 높았으나 남서쪽 부분은 무너지고 북동쪽 부분만 6층까지 남아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미륵사지 석탑

 

 

 

□ 미륵사지 석탑(서탑)

백제 시대 말기에 화강암으로 지은 미륵사지 석탑높이가 14.24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돌탑으로, 우리나라의 돌탑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지금은 일제가 보수 공사를 이유로 훼손해 놓은 것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부분. 처음에는 시멘트로 대충 발라 놓아 흉한 상태였다. 일제 강점기에 탑의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발라 반쪽 부분만 남아 있었으나 무너질 위험이 있어 2001년부터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중인 2009년 1월에 석탑 1층에서 사리를 보관하는 그릇인 사리 장엄구, 절이 세워지게 된 이유를 기록한 금판 등 국보급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온 미륵사 창건에 관한 기록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공사는 2018년 마무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수한 미륵사지 석탑(동탑)

 

□ 미륵사지 석탑(동탑)

반쪽이나마 탑의 형체는 유지되고 있었던 서탑과 달리, 미륵사지 동탑은 사진과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근현대에는 이미 땅에 묻힌 기단부를 제외하고 완전히 소실된 뒤였고, 탑의 부재만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미륵사지 주변에는 민가가 여럿 있었고, 그들 입장에선 탑의 터는 그저 돌무더기에 불과했기에 여러 곳에서 돌들을 가져가 필요한 데 쓰면서 많은 부재들이 소실되었다. 이 부재들은 추후 탑의 층수를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미륵사지 석탑(동탑)

 

삼국유사에는 미륵사와 관련된 설화가 2번 나온다. 하나는 법왕이 부여에 처음 짓기 시작해서 무왕이 마무리를 했다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서동이 무왕이 되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 아래에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미륵삼상은 미래불인 미륵이 3번 설법하여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용화삼회설에 입각한 것이다. 전, 탑, 낭무를 각각 3곳에 세우고 미륵사라고 하였다는 것은 기록과 실제 미륵사 터의 흔적이 일치한다. 이 때문에 익산의 미륵사가 무왕이 세운 절이라는 설이 있다.

 

익산미륵사지전화번호 :063-830-0900 유적지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