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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이씨

손곡(蓀谷) 이달(李達), 홍주 이씨 14세. 신라와 고려를 통틀어 삼당시인(三唐詩人)의 제일인자

by gwangyeob5958 2024. 9. 11.

❐ 손곡(蓀谷) 이달(李達), 홍주 이씨 14세 

이달(李達. 1561~1618)은 조선 중기 선조(宣祖) 때의 한시인(漢詩人)이다. 본관은 홍주(洪州)이고,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이며, 동리(東里)·서담(西潭)이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홍주(지금의 홍성) 구항 마을에서  홍주 이 씨 이첨지의 14세로 태어났다.

 

한시(漢詩)의 대가로 문장과 시에 능하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신분적 한계로 벼슬은 한리학관(漢吏學官)에 그쳤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에 힘써 이백(李白)과 성당십이가(盛唐十二家)의 작품들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시문에 뛰어난 정사룡(鄭士龍)과 박순(朴淳) 등의 문인(門人).

 

홍성군 구항마을에서 태어나 원주시 부론면 손곡(蓀谷)에서 살았으나, 전국을 주유하면서 살았다. 

        

손곡 이달(1539~1612)은 퇴계선생 문하생으로서 당시(唐詩)에 능통했던 조선조 대표적인 한시인으로 <손곡집>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손곡집 : 제자 허균이 손곡 이달의 시를 집필]

 

1564년(명종 19년)에 진사가 되고, 1567년(명종 2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 홍문관 부수찬,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했다.

 

이달은 시, 문학, 음악, 그림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시가 뛰어났는데, 그의 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잘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달의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춘망곡"이 있다. 이 시는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로 꼽힌다.

 

이달은 또한 학자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 참여했고, "동문선"과 "악학궤범"을 수정, 보완했다. 

 

이달은 1599년(선조 32년)에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묘는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습니다.

 

원주역사문화 순례길 손곡시비쉼터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1576-1

원주역사문화 순례길 손곡시비쉼터

 

 

 

 

❏ 손곡 이달의 문학

손곡집은 조선 중기의 문인 이달의 시집이다. 1618년(광해군 10년)에 허균이 이달의 제자 홍유형으로부터 얻은 시 130여 수와 평소에 암기하고 있던 시 200여 수를 이재영에게 편집하게 했다.

 

손곡집은 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3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달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자 했다.

 

손곡집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

❍ 춘망곡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작품

❍ 만랑가

 술을 벗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의 작품

❍ 손곡산인전

이달의 삶과 학문을 소개한 전기

손곡집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집으로, 이달의 문학적 역량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조선 중기의 풍요로운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다.

❏ 손곡집의 문학적 특징

손곡집의 시에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이 나타난다.

❍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이달의 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잘 표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자 했다.

❍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

이달의 시에는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가 나타납니다. 그는 과장이나 허식을 배제하고, 자연스럽고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 민중의 정서 반영

이달의 시는 민중의 정서를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민중의 삶을 이해하고, 민중의 눈높이에서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손곡 이달 손곡시비(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1576-1)

❏ 손곡 이달의 춘망곡

이달의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춘망곡"이 있다. 이 시는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로 꼽힙니다. 다음은 "춘망곡"의 일부이다.

❍ 춘망곡

봄빛이 창문에 비치니

꽃이 피고 새가 우는구나

꽃은 지고 새는 날아가니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구나

봄이 가면 어찌하겠느냐

가고야 말겠지

봄이 가더라도

봄의 정을 잊지 말자

 

이달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자 했다. 이달의 시를 통해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이달의 제자 허균(許筠)이 이달의 전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었다.

 

■ 산사(山寺)

 

 佛日庵 因雲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사재백운중    백운승불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객래문시개    만학송화노)

 절집은 흰구름 가운데 자리하고,

 그 흰 구름을 스님네는 쓸지도 않네.

 손님이 찾아와서 문이 비로소 열리니,

 온 산山의 송화가루 하마 쇠었네.

 

■ 화학(畵鶴) 그림 속에 학鶴

 

 獨鶴望遙空 (독학망요공)

 夜寒擧一足 (야한거일족)

 西風苦竹叢 (서풍고죽총)

 滿身秋露滴 (만신추로적)

 외로운 학이 먼 하늘 바라보며,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있네.

 가을바람에 대숲도 괴로워하는데.

 온몸이 가득 가을 이슬에 젖었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슬픔, 모순적 현실을 차가운 밤으로 비유한 글이다.

❏ 신라와 고려를 통틀어 삼당시인(三唐詩人)의 제 일인자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  1637~1692)은 “손곡(蓀谷)의 작품인「별리예장(別李禮長)」이 조선을 통틀어서 오언절구(五言絶句)의 최고작”이라고 논평할 만큼 시재(詩才)와 문장력이 뛰어났기에 선조 때 사역원(司譯院)의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되기도 했으나,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곧 사직하고는 향리에 은거했다. 

 

손곡(蓀谷)은 기녀(妓女) 홍랑(洪娘 : ?~?)의 연인으로 유명한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 1539~1583)․ 가사문학의 효시인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 : 1537~1582)과 함께 뜻을 모아 시사(詩社)를 조직한 후, 고죽(孤竹)과 옥봉(玉峯)의 스승인 사암 박순(思庵 朴淳 : 1523~1589)을 만나 당대(唐代)의 여러 시집(詩集들을 접하게 되면서 시(詩)의 정법(正法)이 당시(唐詩)에 있음을 깨닫고 당시인(唐詩人)의 시체(詩體)를 탐구하는 한편, 율시(律詩)와 절구(絶句)를 지어 내기 시작해 5년 동안 오로지 시법의 연구에만 몰두한 결과, 신라와 고려를 통틀어 당시(唐詩)에서 아무도 손곡(蓀谷)을 따를 수 없다는 평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膾炙)되면서  고죽(孤竹)과 옥봉(玉峯)을 제치고 삼당시인(三唐詩人)의 제 일인자로 꼽히게 되었다.

 

특히 절가곡(律絶歌曲)과 칠언율시(七言律詩)에 능했던 손곡(蓀谷)의 대표작으로는「반죽원(斑竹怨)과 「만랑가(漫浪歌)등이 있다.  

 

한편, 손곡(蓀谷)의 명성과 고결한 인품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당시의 명문 귀족이었던 초당 허엽(草堂 許曄 : 1517~1580)이 자식들인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 1563~1589)와 교산 허균(蛟山 許筠 : 1569~1618)을 보내 제자로 삼아 줄 것을 부탁하자, 손곡(蓀谷)은 그들 남매에게 평민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이상을 전수시켰는데, 훗날 교산 허균이 서자(庶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홍길동전(洪吉童傳)을 쓰거나  적서 타파(嫡庶 打破)를 주장한 것이라든지, 양반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자세와 함께 풍자적이면서도 서민 생활을 옹호했던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詩 정신은 손곡(蓀谷)의 정신적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 허균이 애절하면서도 예리한 필치로 쓴 전기소설(傳記小說)『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 손곡(蓀谷)은 허균(許筠)이 반역죄로 참형당했던 그 해에 역시 62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쳤다.

 

■ 방림역(芳林驛)

 

서양하계교(西陽下溪橋) 

낙엽만추경(落葉滿秋逕) 

소소객행고(蕭蕭客行孤)  

마도한계영(馬渡寒溪影)

서녘 해 계곡 다리에 비추고

낙엽은 가을 길에 가득하다     

쓸쓸한 나그네길 외롭고

말이 차가운 시내를 건너는 그림자뿐.

 

손곡(蓀谷) 이달(李達)은 평생을 유랑으로 떠돌다 죽은 인물로 , 당시의 사회를 질타한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가 강릉을 지나다가 쓴 시(詩)로, 나그네의 고독을 나타내기 위해, 시어(詩語)들이 한결같은 은유의 효과를 가지고  서양(西陽), 낙엽(落葉), 추경(秋逕), 소소(蕭蕭), 고(孤)들로 이루어져 나그네 길을 수식어 기능을 하고 있다.

 

자칫 이완된 진부한 감정의 표출을 하기 쉬웠으나, 마지막 구인 한계(寒溪)에 이르러 그 차가운 감각에 의한 자제의 효과를 환기시키는 수품(秀品)이다.

 

인적 없는 가을 숲길의 석양에 조촐하지만, 느릿느릿하게 차가운 시내를 건너는 나그네의 말 탄 그림자라는 한 폭의 수묵화의 여유와 여백이 묻어난다.

 

마지막 ‘그림자 영(影)’에서 이 시(詩)를 맺고 있는데, 서자(庶子)로써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설움 가득한 나그네가 울음을 삼키며, 자기 그림자를 뒤돌아보는 데, 이 시(詩)의 묘미가 있다.

 

■ 江陵別李禮長之京 : 강릉별이예장지경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이예장과  작별하며)

 

桐花夜煙落(동화야연락), 오동꽃은 밤안개 속에 떨어지고

海樹春雲空(해수춘운공), 바닷가 나무 위로 봄 구름은 흘러가는데

芳草一杯別(방초일배별), 향긋한 풀 내음에 한 잔 술로 이별하지만

相逢京洛中(상봉경락중), 서울에서 서로 다시 만날 날 있으리.

 

■ 靈谷尋春(영곡심춘) : 영곡의 봄놀이

 

東峯雲氣沈翠微(동봉운기심취미), 동쪽 봉우리 구름이 산자락에 잠겼는데

澗道竹杖尋芳菲(간도죽장심방비), 산골물 따라 대지팡이로 고운 풀 찾아 나섰다.

深林幾處早花發(심림기처조화발), 깊은 수풀 어느 곳에 이른 꽃이 피었는지

時有山蜂來撲衣(시유산봉래박의), 때때로 산벌이 옷소매에 달라붙는다.

 

■ 내표지역 숨겨진 이야기 : 홍주장터와 손곡 이달의 탄생 유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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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⑱홍주장터와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탄생 유래담 - 홍성신문 내포타

우리고장 홍성읍 오관리에는 광복 이후까지 홍주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는 대교리 5일 시장과 오관리 상설시장으로 모든 기능이 옮겨갔지만, 옛 시절 홍주장터와 관련된 많은 일화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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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손곡 이달 손곡시비(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1576-1)